요즘 현대사회에서 사랑과 결혼이 갖는 의미를 돌아보던 중 읽게 된 책, 에로스의 종말.
많은 지인들의 결혼 때문에 시작된 고찰이지만,
최근 점점 인기가 많아지고 있는 소개팅 앱,
예전부터 성황하고 있는 커플 매칭 서비스 등을 보면서
예전부터 무의식중에 궁금하고 이해가 안되었던 부분들을
이 책을 읽으면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책을 완벽하게 이해할 만큼 제 지적 능력이 뛰어나지 못하지만 🙁
한병철씨가 던져준 먹거리를 제 나름대로 곱씹어 보았습니다.
[사랑의 재발명]
책은 알랭 바디우의 서문 “사랑의 재발명”으로 시작합니다.
과거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사랑은 죽었다는 전제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과거 사랑은 무엇일까요?
결혼 전날까지 혼인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다음날이 지나면 서로가 키워나가야할 감정?
과거 현실에서는 찾기 힘들지만,
문학에서나마 묘사되었던 로미오와 줄리엣간의 감정?
어떤 정의이든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랑과는 다릅니다.
가장 자주 등장하는 차이점은 바로 자유라는 것인데요,
예전에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특정 계층과 성별에게만 주어졌었고,
선택권이 있었던 사람들에게도,
물리적 한계로 인해 선택의 폭이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물리적인 거리가 좁아지고,
개인주의 사상이 사회에 자리 잡히면서,
사랑도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자유”라는 말은 조심스럽게 쓸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요,
물론 과거에 비해 선택권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나,
실제로 완전히 자유롭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특히 커플 매칭 서비스를 사용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아무리 자유로워진 사회라고 할지라도
끼리끼리 놀고 싶어하는 아니면 본인보다 객관적인 스펙이 더 좋은 사람을 만나고자 하는
욕구가 만연하기 떄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랑과 결혼도 일종의 성과로 보는 것입니다.
흔히 주변에서 결혼을 잘했다 못했다라고 평가하는 기준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의 이성화]
이런 성과주의는 사랑을 이성화 시키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가 사랑의 의미를 고민할 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슴 벅찬 감정입니다.
모든 이성은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생겨났다는 말도 있듯이,
사랑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아름답고 경의로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사랑이라는 것이 점점 공식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라는 책의 여주인공을 예시롤 제공했는데요,
일정 조건들이 성립되면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본인만의 알고리즘을 만들어가고 있는데요
예를 들면 학교는 어디나오고,
연봉은 얼마 이상에, 어떤 취미가 있으면 좋고…
친구들을 만나거나 소개팅을 해도 자주 나오는 질문은 “이상형이 어떻게 되시나요?”
특히나 이것은 한국사회에서 강하게 나타는 성향인데,
결혼을 많이 중시하는 사회이므로 나타는 현상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또한, 자유가 많아져 점점 잠재 상대들은 많아지고
바빠지는 일상에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는 적어진 현대인에게 효과적인? 방법이죠
어떻게 보면 금융회사에서 리스크 매니징 모델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이 나에게 사랑이라는 목표를 실현시킬 수 있는 요소들을 갖췄는지 점검하기 위해
성공요소들과 위험 요소들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만족할만한 조건들을 충족하면 연애를 시작하곤 하지만,
그것이 남들이 인정하는 성공적인 사랑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겠죠?
[포르노]
이번 책에서 가장 신선하게 다가온 부분입니다.
바로 사랑의 주요 요소로 호기심, 비밀이라고 합니다.
흔히 포르노를 접한 여성분들의 일반적인 반응은
“야하다”가 아닌 “더럽다”라고 하는데요,
이 반응도 전혀 비밀스럽지 않은 콘텐츠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과주의 사회에서 본인만의 기준을 활용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것의 부작용으로 그만큼 신비감이나 호기심은 없어졌다는 것이겠죠.
어떻게 보면 저자가 말하는대로
현대사회에서 사랑은
기승전결이 예상 범위 안에 있는,
점점 포르노와 비슷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과주의 사회에서 나 자신이 상처받거나 남의 눈에 실패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위해
고려해야할 사항들이 너무나 많아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잠재 상대들의 범위가 넓어져 “어딘가에 이보다 더 좋은 사람이 있을수도?”
라는 욕심을 쉽게 버릴 수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이죠.
그래서 서로가 사랑하고 있다고 인정하기 전에
여러가지 요소를 점검하는 시간들이 점점 길어지는데,
이것을 지칭하여 “썸”탄다라는 말까지 나온게 아닐까요?
저는 현대사회에서 변형된 사랑의 정의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각 시대마다 그 시기의 필요에 따라 변형되는 것들은 사랑이라는 개념 말고도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하지만 본인이 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는 고민해 볼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본인은 동화책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에로스적인 사랑을 꿈꾸지만,
방법론적으로는 현대사회의 틀에 갇혀있다면, 불행해질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요?
에로스의 종말 에서 한병철씨가 갖고 있는 우려를 한번 곱씹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명대사]
“사랑은 하나의 가능성이 아니다. 사랑은 우리의 주도권에 따라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랑은 밑도 끝도 없이, 우리를 급습하고, 우리에게 상처를 입힌다.”
“진정한 사랑의 최소 조건, 즉 사랑을 위해서는 타자의발견을 위해 자아를 파괴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지배자는 자기 자신을 통해 타자를 장악하지만, 사랑하는 자는 타자를 통해 자기자신을 되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