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고 나에게 가장 막막했던 것은 GRE도 에세이도 아닌 3장의 교수 추천서. 혹자는 교수를 찾아뵙고 부탁하기만 하면 되는 일인데 왜 어려운지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나처럼 대학원 지원할 생각 없이 학부를 다녔고, 몇 년간의 직장 생활하는 동안 단 한 번도 교수님을 찾아뵙지 않은 배은망덕한 제자에게는 어느 날 뜬금없이 교수님께 추천서를 부탁드리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미국에서 학부를 졸업한 탓에 직접 찾아가는 것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여러 선배들의 조언을 구하고 고민한 끝에, 추천서를 구하기 위해 미국 원정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원정 준비, 나의 추천인을 찾아서]
떠나기 전, 우선 내가 재밌게 들었던 수업의 교수님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중 아직도 학교에 계시는 분들만 추리고, 그리고 내가 지원하려는 대학원 학과와 관련된 교수님들을 추리고, 좋은 성적을 받은 수업들을 추리고… 결국 리스트에 남은 최후의 3인.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하지 못한 나의 죄ㅠㅠ) 다행히도 대부분 학교가 교수님 추천서는 하나만 필수고 나머지는 직장 상사나 멘토에게 받아도 된다고 해서 한국에서 받을 수 있는 분들도 추가하고 보니 6명이 되었다. 이때 선정 기준을 어떻게 해야 할까?
Tip 1: 추천서는 양보다 질이 중요한 항목이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1) 지원하고자 하는 대학원의 추천서 requirement 부합하는지 2) 내 application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얼마나 일관성 있으면서도 다채롭게 꾸며 줄 수 있는지 3) 명성 및 지원학교 졸업 여부.
예를 들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되는 것이 목표인 직장인 지원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가장 이상적인 추천인은 수학이나 컴퓨터 사이언스 분야에 종사하는, 본인과 가깝게 지내는, 저명한 직장인 상사나 교수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직장인에게 이런 이상적인 추천인이 3명 이상 있기 힘들기에 위에 있는 우선순위를 활용해야 한다. 유명한 교수의 그저 그런 평범한 추천서보다는 본인과 OOO 한 지원자라는 것을 이야기와 경험을 통해 증명해줄 수 있는 추천인이 더 가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리스트를 만든 후 추천인에게 연락을 해야 할 단계. 이 단계에서부터 많은 지원자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시작한다. ‘선물을 사들고 찾아가야 하나?’ ‘우선 이메일을 보내는 게 좋겠지? 안부를 묻고 바로 추천서 써주세요 하면 이상하지 않나?’ 오죽하면 구글에 “How to ask your professor for a recommendationletter”이라는 검색어가 인기일까.
모 교수님에 의하면 많은 교수들이 학생들의 추천서 써주는 일을 본인 업무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크게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 말을 믿고 보낸 추천서 부탁 이메일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 임이 되어 나의 한이 되었다. 쓰라린 가슴 안고 여러 번 시도 끝에 배운 것은 다음과 같다:
Tip 2: 유학을 일찍 결심했다면 본인이 생각하는 추천인들에게 가끔 안부 전화도 드리면서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자. 그리고 정말 친한 분이 아니면 이메일이나 전화를 통해 바로 추천서를 부탁하지 말자. 조금이라도 애매하다면 우선 “대학원을 갈지 말지 고민이어서 상담을 받고 싶다”든지 “교수님의 연구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관련해서 얘기를 나누고 싶다”든지 그 추천인과 대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메일에 추천인이 본인이 누군지 기억할 수 있도록 부가 설명을 넣는 것도 추천한다. 물론 거절할 수도 있지만, 이런 경우 차선을 바로 준비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1인 추천서 원정대]
그리하여 회사에 친구 결혼식이 있어서 미국 가야 한다고 거짓말하고 떠난 짧은 미국 원정. 비행기 안에서 내내 수십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하며 똥줄 탔던 기억이 생생하다. 교수가 너무 나이가 많아서 치매 증상이 있어서 나를 기억 못 하면 어떻게 하지? 면전에서 안된다고 하면 나는 웃으면서 “이츠 오케이 아이 언더스탄드ㅜㅜㅜㅜㅜ” 하는 연습도 하면서…
다행히 내가 만든 리스트에서 찾아간 교수님들은 미국까지 날아와 블랙 서클이 만연한 내 얼굴이 불쌍해 보였는지, 나의 사정을 듣고 써주겠다고 말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대화의 구조는 모든 경우에 매우 비슷했다. 안부 -> 가짜 상담 신청 이유(요즘 제가 교수님 연구분야 쪽에 관심이 생겨서~ 이런저런 질문들이 있습니다)-> 대답 청취 후 조심스레 추천서 부탁 (이런저런 질문들을 탐구하다가 제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대학원의 길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교수님의 도움을 주신다면 더욱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충성! (소정의 선물 증정). 교수님들과의 몇 차례 대화 끝에 아쉬움이 남은 것이 있다:
Tip 3: 나의 지원 동기를 최대한 명확하고 간략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나 역시 이 부분이 조금 부족해서 많이 풀어서 설명해야 했다. 또한, 본인의 이력서 혹은 사전에 했던 프로젝트 예시가 있다면 함께 보여주면서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교수님들이 추천서 작성을 위해 추후에 요청하겠지만, 미리 준비해 가는 것을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근거자료들을 바탕으로 본인의 어떤 부분들을 부각하였으면 하는지도 피력하는 것이 좋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큰 걱정거리 하나 없앴다는 생각에 나름 뿌듯해하며 돌아온 여정. 나의 지원과정은 이제 핑크빛… 은 무슨 정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모 학교 지원 마감시간 3일 전. 추천서를 써주시기로 한 교수님 한 분이 추천서를 보내지 않았다. 친절한 독촉 이메일을 보냈다. 2일 전에도, 하루 전에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결국 국제전화도 3통 했지만 받으시지 않아, 학교에 있는 친구에게 교수님 사무실을 방문해달라고 부탁했다. 알고 보니, 일주일 전에 갑작스럽게 쓰러지셔서 응급실에 의식불명 상태로 입원해 계셨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온 우주의 기운이 나의 대학원 입학을 막기로 한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생긴 순간.
Tip 4: 학교에서 3개만 요구한다고 3분에게만 요청하지 말자. 대부분의 추천인은 매우 바쁜 분들이기에 deadline을 못 지킬 때도 있고, 갑작스러운 사정이 생길 때도 있다. 추천서를 하나 더 낸다고 해서 penalize 하는 학교는 없기에 넉넉하게 준비할 것을 추천.
다행히도 나를 구제해준 추천인 한분 덕분에 지원은 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학부를 나온 특수한 상황 때문에 나의 추천서 원정은 조금은 고단하고 특별한 면은 있었지만, 한국에서 요청하더라도 큰 틀은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미국 대학원 추천서의 비중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서 나 같은 삽질은 미연에 방지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