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많을수록 힘든 가난한 대학원생의 미국 집 구하기

by ThePupil
미국 집 구하기

얼마 전에 미국 집 구하기 미션 성공했다. 대부분 학교에서 기숙사를 학부생들에게 우선적으로 제공하므로 대학원생들은 집을 별도로 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학부 때에 경험이 있어 비교적 수월했지만, 집을 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 계속 신경이 쓰인다. 보통 직접 집을 구경하면서 구하는 것이 맞지만, 이번에는 구하러 돌아다니는 기간 동안의 숙박 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진만 보고 계약을 했다. 학생비자로 최대한 빨리 입국 가능한 시기가 학기 시작 한 달 전이기에, 급하게 계약하기 싫은 것도 큰 이유였다.

돌아보니 집을 계약할 때까지의 과정이 마치 최근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온라인 데이팅 앱을 사용한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많이 해본 것은 아니지만 ^^^^) 사진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는 것부터 지칠 때까지 시도해야 목표를 달성할까 말까 한다는 점까지… 부끄럽지만 겸허한 마음으로 최소 일 년간 나와 동고동락하게 될 “그녀”를 만나게 된 스토리를 공개하고자 한다.

 

[1단계 – 막연한 설렘]

 

시작은 가벼운 마음으로 여기저기 있는 사진들과 정보들을 찾아본다. 수영장이 구비되어 있는 주상복합부터 곡성에서나 나올 것 같은 음산한 낡은 집들을 보며 정말 다양한 스타일과 조건의 방들이 있다. 너무나도 다양하고 많은 선택지 앞에서 본인만의 기준이 있어야 만족스러운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라고 묻는 느낌.

미국에서 아파트 구할 때 나의 우선순위

  1. 월세 (전기비 수도비 같은 Utilities포함 여부, Furniture 포함 여부 등)
  2. 위치 (학교에서의 거리, 안전한 동네, 기타 편의시설들과의 거리 등)
  3. 시설 (Heating/Cooling 잘되는지, 문지기가 있는지 등)
  4. 관리회사
  5. 방 구조

* 초반에 정해야 할 사항들

– Roommate를 구할 것인가 말 것인가? 방짝이 있으면 혼자 살 때와 비교했을 때 중점적으로 점검해야 할 항목들이 조금씩 달라진다. 예를 들면 방 구조가 조금 더 중요해지는 대신 월세를 둘이 나눠서 내기에 조금 더 싼 가격에 더 좋은 집을 구할 수 있다.

– 한국에서 계약을 할지 아니면 도착하고 직접 방문하면서 결정할지. 학생비자로 최대 30일 이전에 입국 가능하기 때문에 시간이 넉넉하진 않지만, craigslist/사설 부동산 사이트/학교 사이트 등을 이용한다면 크게 힘들진 않다고 들었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집을 구하는 것은 본인이 리스크를 짊어져야 할 상황이다.

* 아파트 정보 구할 때 기타 추가적으로 물어보면 좋은 질문 List

– Utilities가 어디까지 월세에 포함되어 있는지

– Maintenance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절차로 수리 신청을 해야 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되며, 비용은 어떻게 정산되는지. 24/7 대기 중인지.

– 계약 파기 시 어떤 절차가 있고, 어떤 fee가 있는지 (룸메가 있을 시에는 룸메 바꾸는 과정도 중요)

– 아파트 재계약률이 어느 정도 되는지 (재계약률이 높을수록 만족스러웠다는 것을 의미)

– Sublet은 가능한지? (여름방학 동안 한국에 돌아올 계획이라면 중요한 부분)

– 냉난방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되는지 (중앙 조절/개인 조절) 이에 따른 비용 청구는 어떻게 되는지

– 애완동물 정책

– 보증금 혹은 입주자 보험이 필요한지

– promotion 진행 중인 것은 없는지. 가끔 빨리 계약한다는 전제하에 첫 달 월세를 할인을 해주거나 입주자가 특정 신용 조건을 만족할 때 월세를 할인해주는 프로모션이 있다. 이메일로는 물어보기 전엔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꼭 먼저 물어보도록 한다.

– 방 decoration 은 어느 정도까지 허용하는지 (액자 거는 것이 가능한지 등)

– 방문객 정책은 어떻게 되는지

 

미국 집 구하기

현실과 이상의 차이는 컸다

 

[2단계 – 실망감에 시련이 찾아오고…]

 

이 정도 기준 맞출 수 있는 방들은 많겠지?라는 평소에는 찾을 수 없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다시 검색을 시작한다. 한눈에 비교할 수 있도록 각 집을 기준에 맞게 점수를 부여하고 정렬 하면 매우 쉽게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근거 없는 낙천성을 용납하지 않는다. 항상 하나를 만족하면 다른 하나가 아쉽고, 그 다른 한 가지를 만족하면 또 다른 한 가지가 아쉽다. 직접 방을 찾아갈 기회가 있는 사람이라면 현대 사진 기술의 감탄을 표하며, 낚시 당해 파닥파닥 거리는 물고기의 심정을 이해한다.

이상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실망감에 혼란스러워하며 주변 사람들의 조언들을 구한다. 이상적인 관계를 위해서는 어떤 것이 중요한지 그들의 조언을 들으면 선택이 더 쉬워지리라. 하지만 그 또한 오해라는 것을 금방 깨닫는데…

친구 1: Bed bug가 감염된 적이 있는지 알아봐야 해! 그거 재발 가능성이 엄청 높데~

선배 1: 겉모습에 현혹되면 안 된다~ 내실이 중요한겨~

친구 2: 내 방에서 쥐가 나온 적도 있어! 그리고 한 번은 집 문 앞에 야생 오소리가 자고 있어서 못 들어간 적도…;;;;

선배 2: 방음이 되는지 꼭 확인해! 옆방 밤사정을 강제적으로 공유받고 싶지 않으면 🙂

친구 3: 핵심은 눈을 낮추는 것이다

선배 3: 도시에 갈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주변에 버스정류장이나 전철역 있는지 봐야 한다~

처음에는 열심히 경청하다가, 나중에는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방을 찾는 것보다 학부생으로 위장해서 몰래 기숙사 생활하는 것이 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일까?

* 본인의 조사가 끝났다면, 주변인들의 조언을 구한다. 물론 그것이 과하게 느껴질 때도 (aka 오소리)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가본 선배들의 조언 중에서 생각해보지 못한 점이 있을 수도 있기에, 가려서 취하되 반드시 사전 조사는 필요하다.

 

[3단계 – Denial]

 

미국 집 구하기

깨우지 말아주세요

실망감을 이겨내기 위해 사람이 가장 먼저 취하는 변화는 denial이다. 현실을 부정 또는 무시하고 자기만의 이상적인 세상을 건설해 자신을 그 안에 가둔다. 마치 매트릭스에서 가짜 스테이크인 것을 알면서도 그 꿈에서 벗어나기 싫어하는 것처럼 말이다. 갑자기 현실적으로는 절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집들만 찾아보며, 그 속에 자신이 산다면 얼마나 행복할지 상상한다. 산 위에 있어 전망도 좋으면서 앞에 개인 풀장이 있어 언제든지 공부하다가 더우면 뛰어들어서 맥주 한 병과 함께 몸을 식히는 상상, 아니면 야경이 너무 아름다운 고층 아파트에서 짙은 재즈 운율이 가미된 와인 한잔을 음미하는 모습. 빌라가 학교에서 차 타고 30분 거리인 점이나, 고층 아파트 월세가 예전 직장 월급보다 높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연예인이나 그에 버금가는 비주얼을 가진 이성의 사진을 보며 훈훈해지고 행복해지는 것은 현실성과는 관련 없지 않은가. 단지 이 달콤한 꿈에서 깨지 않길 바랄 뿐. 그렇게 현실도피가 시작된다.

* 그래도 꿈을 빨리 깨는 것이 이득이다.

 

[4단계 – RudeAwakening]

 

미국 집 구하기

이렇게 깨어난 느낌…

그렇게 공상 속에서 살다가 갑자기 달력을 보게 된다. Winter iscoming…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낼 수도 있다는 비극적인 생각이 사람들을 다시 현실로 끌어내려 연말 커플 붐을 일으키듯이, 대학원 시작일이 얼마 안 남았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 현실로 소환했다. 워낙 달콤했던 꿈속에서 지낸지라, 현실은 이전보다 더 무섭게 다가온다. 이전에 점찍어둔 곳들은 이미 다 계약 완료됐고, 괜찮네? 정도의 집들도 많이 나간 상태다:( 이대로 가다가는 shit hole에서 살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겸손함이 되어 현재 남아있는 옵션들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한다.

* 이때 기존에 마음에 들었던 집이 사라졌다고 너무 실망할 이유는 없다. 7 ~ 8월이 다가오면 더욱더 많은 매물이 나올 수도 있으므로 정말 남아있는 방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우선 예약을 걸고 최대한 버티다가 매물이 나오지 않을 경우 최종 선택하는 방법도 있다.

 

 

[5단계 – 해탈]

 

고민 끝에 하나의 방을 정한다. 이쯤이면 뭐라도 되겠지?라는 생각 반, 어디 살던 나만 열심히 공부하면 돼!라는 슬픈 자기 정당화 반이 혼합이 돼서 어려운 결정을 하기 위한 용기가 생긴다. 신청서와 함께 applicationfee를 관리자 사무실에 온라인으로 제출한다. 이것으로 끝난 줄 알았지만, 사무실에서 접수가 되는 순간 30장짜리 계약서를 보냈다^^ 금액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방문객 취급방침 등 추후에 손해보지 않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둬야 할 사항들이 포함되어 있다. 세심하게 검토한 후 전자서명을 통해 이 방을 공식적으로 내 파트너로 맞이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걱정이 공존하지만, 우선 성사되었다는 사실 하나로 어깨가 들썩인다. 앞으로 같이 지내면서 시련도 있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걱정하는 걸로.

 

미국 집 구하기

모르겠고 그냥 빨리 끝내고 싶음

 

* 계약서상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 반드시 물어보도록 한다. 예를 들면, 최근에 에어비앤비를 못하도록 조항을 추가하는 아파트가 많다고 한다. 계약서에 사인하는 순간, 그 계약서에 모든 내용에 동의하는 것이기에 신중해야 한다. 그리고 집 주인이 다른 소리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계약서 한부를 인쇄를 해놓고 집에 간직해야 한다.

* 미국은 지원서 제출하고 접수하는데 $30 ~ $100 정도 지불해야 한다. 또한, 어떤 회사들은 보증금 대신 신용 background 검사를 하는데, 이때도 비용이 발생한다. 보증금과 차이는 돌려받지 못한다는 것과, 본인의 신용도에 따라 지불해야 하는 금액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미국 시민권이 없다면 대부분의 경우 최고액을 지불해야 한다. 외국인의 삶은 서럽다.

 

집 구하는 과정을 단계별로 나눠서 정리한 이유는, 각 단계별로 중요한 포인트가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만들려면 한없이 어렵게 만들 수 있고 쉽게 하려면 쉽게 할 수 있는 게 집 구하기다. 결국 본인 성격에 따라 중요한 사항들을 우선순위 별로 정리하고 그에 맞춰 결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막상 연애를 시작하면 밀당하던 시절은 그저 추억으로 남듯, 미국 집 구하기 역시 힘들고 지친 기억들도 지나고 보면 추억으로 남으니 이 모든 과정을 조금이라도 즐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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