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물원에 사는 직장인 낙타였다

by ThePupil
직장인

아직 직장인 삶을 살던 어느 날 오후, 모처럼 일이 별로 없으셨던 차장님께서 잠깐 도넛 먹으러 가자며 1층으로 내려가셨다.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내려갔을 때 이미 다른 2명의 사원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아들 잘 크는 얘기, 주식 대박 난 얘기, 삶이 no부질이라는 푸념…그런 흔한 직장 얘기가 오가다가 갑자기 차장님께서 두서없이 말씀하셨다.

“공부 열심히 해봤자 별로 소용없는 것 같다”

열심히 차장님의 말을 경청하던 사원들은 그 이유를 물었는데, 도리어 차장님이 직접적인 대답 대신 특유의 부산 사투리로 아래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옛날 옛날에 낙타 두 마리가 있었어~ 아기 낙타랑 엄마 낙타.

어느 날, 아기 낙타가 뚜벅뚜벅 걷다가 엄마 낙타에게 물었어.

“엄마, 왜 우리의 발은 굽으로 되어있나요?”

“얘야~ 그건 우리가 사막을 건널 때 모래에 발이 빠지지 않기 위함이란다~”

“아하! 그렇구나~”

그렇게 다시 뚜벅뚜벅 걷던 아기 낙타가 다시 질문했데.

“엄마, 그런데 왜 우리의 등은 이렇게 높게 솟아 있어요?”

“얘야~ 그건 우리가 사막을 건널 때 햇빛에 오는 열을 분산시키기 위함이란다~”

“아하! 그렇구나~”

그렇게 다시 뚜벅뚜벅 걷던 아기 낙타가 또다시 질문했데.

“엄마, 그런데 왜 우리의 눈썹은 이렇게 짙어요?”

“얘야~ 그건 우리가 사막을 건널 때 모래바람이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란다~”

“아하! 그렇구나~우리는 역시 사막을 건너기 위해서 최적화된 동물이군요!”

아기 낙타의 궁금증이 다 해결된 듯, 해맑게 계속 걸어갔는데.

갑자기 이상한 것을 발견했는지 멈춰서 엄마 낙타에게 또 질문했데.

“엄마~ 그런데 우리 여기가 어디야?”

.

.

.

“동물원”


이 마지막 말을 하고는 혼자 웃음을 터트리셨다.

“요즘 공채들 그렇게 공부 열심히 해서 들어오는데 결국 여기서 이러고 있잖아~ 공부 다 소용없다!”

이 이야기는 분명 누군가에게는 매우 기분 나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나 역시 이야기를 듣고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숨기지 못했고 (중학교 때 별명이 낙타여서 더 화났다), 이 경험이 유학을 결심하게 된 촉매제가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현재 많은 직장인 현실을 정확히 풍자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학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기 전에 목표를 쫓는 방법부터 배운다. 이르면 중학교 때부터 공부를 하는 이유는 좋은 고등학교를, 수능에 목숨 거는 이유는 좋은 대학교의 인기학과를 진학하기 위해서다. 대학을 입학하고 나서는 유명 기업에 입사하기 위한 스펙 쌓기 경주가 시작된다.

이 적자생존 게임에서 도태된 사람들은 자신이 원했는지도 모르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직장에서 오는 어떠한 불행도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라며 자신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게임에서 살아남아서 보통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업한 사람들도 소수를 제외하고 힘들어하기는 마찬가지.

본인이 원하는 직무로 취직을 못했거나, 아니면 원하는 줄 알았다가 가보니 하는 일은 전혀 자신과  맞지 않을 때. 전자일 경우 본인이 원하는 직무를 쫓아가는 새로운 경쟁이 시작되고, 후자일 경우는 내가 이것을 하기 위해 그동안 고생을 참고 달려왔나라는 허무함과 함께 앞으로는 어떤 목표를 세워야 할지 혼란스러운 시간들을 보낸다.

차장님 이야기 속에 동물원에 갇힌 낙타도 (이후 광수생각에서 읽은 이야기라고 말씀하셨다) 후자에 속한다. 얘기를 처음 듣고 낙타는 원래 사막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동물원을 빨리 탈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원 합격했을 때 나도 마침내 사막에 당도했는 줄 알았으나… 지나고 보니 하나의 동물원을 탈출하여 미지의 대지에 정착하고 있는 것뿐.

여기가 약속의 땅인지 아니면 그쪽으로 가는 길인 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아 불안감과 맞서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또 다른 싸움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아지랑이뿐일 수도 있는 사막이라는 곳을 향한 경주를 하게 된 것이다. 물론 펼쳐질지 모르는 가능성에 대한 설렘도 있기에 나는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사막으로 가는 이 여정이 더 괴로울 수도 있다는 주장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낙타는 사막에 사는 동물이다. 하지만 모든 낙타가 그럴 필요가 있는가? 동물원에 있는 낙타도, 사막에 있는 낙타도 자기가 행복하면 그만이다. 자신이 어떤 낙타인지 알아야 할 뿐. 돌아보면 학창 시절 때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독서를 통해 배우고자 한 것은 지식이 아닌 나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나의 굽과 솟은 등과 짙은 눈썹이 되어 이 여정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닐까?

– 사막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낙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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