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때와 장소 (context)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데, 미국 직장 영어 역시 교과서 영어와는 다른 점이 많다. 필자는 미국에서 통계 석사 과정을 이수하며 현재는 잠시 미국 회사에서 인턴중인데,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큰 문화적 차이보다는 작은 표현의 차이에서 놀라는 일이 더 잦다. 이번 글에서는 그 작은 생각 혹은 언어 표현의 차이가 필자를 당황하게 만든 사연을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유머러스한 여자가 좋더라~]
남의 연애사가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도 직장 동료들끼리도 어느 정도 친해지면 자연스럽게 연인의 대한 말들이 오고 가는데, 그럼 자연스럽게 연인이 없는 사람에게는 이상형에 대한 질문이 나온다.(주의: 그래도 미국에서는 상대방이 먼저 말하지 않는 이상 사생활에 대한 질문은 피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남자 친구 있어요?) 그날도 일과 후 동료들과 가볍게 Happy Hour에서 맥주 한잔을 하고 있었다. 한 가지 화제의 대한 대화가 끊기자 침묵이 찾아왔고, 침묵이 야기하는 어색함은 굶주림만큼이나 사람을 절박하게 만든다.
“그런데 다들 이상형이 뭐야?”
마치 모든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질문 같았지만, 단연 시선은 솔로들에게 쏠렸다. 아쉽게도 5분 전 화장실 찬스를 썼던지라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핑곗거리는 소진된 상태. 하아 인생. 서로 누가 먼저 말하나 눈치를 보며 탐색전을 하던 중 백인 남자 동료 하나가 자신 있게 말했다.
“뭐…모든 사람들이 다 얘기하는 외모, 성격 제외하고는 나는 유머러스한 여자가 좋더라… 결국 오래 사귀려면 서로 같이 있을 때 재밌어야 하는 것 같아”
이 대답도 처음 들으면 그저 그런 뻔한 대답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그 친구가 사용한 단어다. Humorous. 직역하면 재밌는, 웃긴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상형을 묘사할 때 자주 쓰는 단어가 왜 생소할까? 그것은 바로 남자에게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필자의 경험으로 미뤄봤을 때 “나는 재밌는 사람이 좋아”는 주로 여자가 남자 이상형을 묘사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물론 재밌는 여자를 싫어할 남자는 적을 것이다. 다만 남자는 재밌는 여자를 묘사할 때 “재밌다”라는 표현보다 “리액션이 좋다”, “호응을 잘해준다”라는 표현을 주로 쓴다. 독자분들 중에 남자가 이상형을 묘사할 때 “유머러스한 여자” “재밌는 여자”가 좋다는 말을 들어본 분들이 몇 분 계실지 궁금하다.
분명 우연의 일치로 발생한 사건을 확대 해석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필자는 이 현상이 각 나라의 성 역할에 대한 관념을 정확하게 묘사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관계에 있어 주로 남자가 initiate을 하고 남자가 이끌어가면서 여자는 그런 리드에 반응(react)을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이상형을 묘사할 때 남성분들은 주동적 성향이 강한 단어 “유머러스하다” 보다는 “호응이 좋다” 등의 수동적인 단어를 쓴다. 반대로 한국 여성분들도 남성 이상형을 묘사할 때 “반응이 좋다”라는 말을 자주 쓰지 않는다. 미국 역시 아직까지 대부분 남자가 관계를 initiate 해야 한다는 시각이 보편적이지만, 관계가 한번 맺어지고 나면 일반적으로 서로에게 바라는 역할은 동일하다. 그래서 미국인 남성들이 이상형을 묘사할 때 주동적인 성향을 지닌 단어들을 더 자주 쓰는 것이 아닐까. 참고로 남성분들 미국 와서 이상형 묘사할 때 “리액션이 좋은 여자”라는 말은 절대 하지 말 것을 권장한다.
[너 어디서 왔니?]
“Where are you from?”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나오는 가장 기초적인 질문 중 하나다. 그리고 우리는 대답을 외우도록 훈련받았다.
“나는 대한민국 서울시 … (그 이상은 privacy).”
거의 자동응답기 수준으로 나오는 대답이다. 필자 역시 미국에서 공부하면서이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럴 때마다 “I am from Korea”라고 말하면 두 가지 대답이 나온다: 1) 아 그렇니?…(그 이후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어색한 침묵…) 2) 북한? 남한? (하아 인생…).
하지만 직장에서는 이 질문이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필자는 인턴을 하면서 깨달았다. 미국 직장에서는 사실 “Where are you from?”이라는 질문이 상당히 예민한 질문이다. 잘못하면 국적으로 차별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너 있는 사람이라면 주로 “Are you originally from this area?”라는 질문으로 대체한다.
하지만 항상 예외는 존재한다. 특히 나이가 좀 있는 중장년층에게는 만나는 상황에서는 이 질문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만 이때 이들이 원하는 질문은 대한민국 서울시… 가 이니다. 만약 그것을 원하고 질문한다면 미국 정서상 옳지 않다는 것을 그들도 인지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하는 대답은 현재 거주하고 있는 미국 주소. 예를 들면, 필자는 시카고 있기 때문에 “I’m from Chicago, doing my Masters in Statistics”라고 대답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필자도 이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 애국자처럼 “대한 민국이요!”라고 대답했다가 상당히 어색한 상황을 만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부디 독자분들은 이런 어색한 상황을 피하길 바란다.
[마무리하며..]
언어를 배우기 어려운 것은 상황에 따라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리액션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미국에서는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문화 배경이 만드는 작은 차이를 이해하면서 언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직접 사회를 경험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 배우는 영어와 미국 영어는 매우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독자분들이 꼭 인지했으면 한다.